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- 광주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과 개비(정엄의 충견석상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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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- 중수기념비, 정엄의 충견석상(개비)


①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첫번째

 - 양림오거리~광주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, 정엄의 충견석상~최승효 가옥(옛 최상현 가옥)~한희원미술관~이장우 가옥(정병호 가옥)


▲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- 광주 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, 정엄의 충견석상(개비), 화살표지점에 위치



■ 광주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과 개비(정엄의 충견석상)

양림오거리에서 위로 올라가서 왼편에 아담한 공간에 광주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과 개비(정엄의 충견석상)가 있다. 정엄이 기르던 개의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, 그만큼 영특했다는 이야기.


▲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- 광주 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, 정엄의 충견석상(개비)


▲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- 광주 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


▲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- 정엄의 충견석상(개비)



정엄의 충견석상

정엄이 기르던 개로 정엄이 써주는 서신을 한양과 평양 등 각 감영에 문서수발을 하였다고 한다. 한양에 서신을 보내려면 서신과 따로 전대에 엽전을 목에 걸어주며 가고 오는 길에 밥을 사도록 했는데. 주막집 아낙이 주는 밥을 먹고 밥값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가면 떠나지 않는 등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영특했다고 한다.

 

그러던 어느 날 한양 심부름을 다녀오던 길에 전주 근처에서 새끼 9마리를 낳게 되었고, 한 마리씩 광주 집으로 물어 나르다 9번째 마지막 새끼를 물어오다 그만 지쳐 죽고 말았다. 정엄은 개의 몸 상태를 미처 살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, 개의 모양을 한 석상을 세우고,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, 그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.



▲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- 광주 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



외국인이다!!! 옆에서 보고 있으니 광주 정씨 정엄선생의 효자비와 정엄의 충견석상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한다.(해설사의 이야기를 통역으로...)


요즘 새삼스레 해설사들을 존경한다. 

‘정엄선생의 효자비’를 보고 있어도 한자를 모르면, 그 문화를 모르면 그냥 돌에 글자 새겨놓은 것이다. 그러나 해설사의 설명이 가미되면 역사적 사실과 문화 이해를 하게 된다.



본 게시물의 위치는 양림동 주민센터 근처 양림오거리 기준입니다.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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